[한국공보뉴스/인천취재보도본부]김영환취재부장
인천 부평구 함봉산 일대 밀집, 1940 년대 무기 보관 및 생산용으로 조성.
인천 부평문화원은 2016년 인천시 부평구 산곡 1ㆍ3동 일원을 대상으로 '부평토굴 생활역사문화콘텐츠 발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24개 지하호를 파악했고, A·B·C·D 4개 구역으로 나눠 구역별 번호를 붙였으나 중간중간 막혀 있는 곳도 있어 전체 길이 등 정확한 규모는 파악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유지에 위치한 지하호 가운데 주인 동의를 얻어 직접 들어가 볼 수 있는 곳은 현재로서는 C 구역 6번 지하호가 유일하며 이들 지하호는 일제가 조선인들을 강제 징용하여 조성했던 것으로 부평문화원 측이 함봉산 일대 토박이 등 주민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징용자 상당수는 전국 각지에서 온 학생들이었다고 한다.
조성 시기는 구체적으로 확인되지는 않았으나 일제 말 1940년대 후반이라는 설이 유력하고 약 70년의 세월이 흘렀으면서도 일제강점기 지하호에서 이뤄진 혹독한 강제노역의 흔적은 지금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으며 지하호의 암벽에 길쭉한 형태의 구멍은 폭약을 터뜨리기 위해 각종 굴착 장비로 구멍을 낸 흔적으로 이곳에 폭약을 넣은 뒤 터뜨려 지하호 형태의 토굴을 넓혀갔던 것으로 추정되며 또한,곳곳의 암반에 박혀 있는 둥근 나무토막은 당시 지하호의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암반에 박아 넣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규혁 부평문화원 기획사업팀장은 "당시 지하호 조성에 투입됐던 사람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조선인 학생들이 강제 징용되어 하루 2교대 작업을 했던 것으로 파악된다"고 하였으며 일제강점기에 조성된 지하호는 전국적으로 많이 분포돼 있지만, 한 곳에 이처럼 대규모 지하호가 밀집된 것은 함봉산 일대가 유일하다고 하였다.
또한, 함봉산 토굴을 군수물자 제조 및 보관, 보급창으로 보는 것은 일제강점기 당시 이곳 근처에 한강 이남 최대 일본군 군수물자 보급공장으로 불리던 육군 조병창이 있었기 때문에 이곳에 대규모 지하호를 조성했을 것이라는 추론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태평양전쟁에서 밀리던 일본이 본토와 한반도에 최후 방어선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함봉산 지하호에 자체 생산 기능까지 갖추려고 했던 것으로 보고 있으며 광복 이후에는 새우젓 토굴 등으로 활용된 덕분에 지금까지도 원형 그대로의 모습을 보존하고 있고 지금까지도 지하호 입구에는 새우젓 보관용으로 사용되는 드럼통 등이 남아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예전 해당 토굴에서 새우젓을 보관, 판매했다는 조배홍 (77)씨는 "과거 인천 소래포구와 연안부두뿐만 아니라 서울 등 전국 각지에서 들어온 새우젓을 이곳에 보관하였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인근 부평미군기지와 3보급단에는 일제강점기 무기공장인 조병창 관련 유적이 남아있는 것으로 파악되었고 토굴의 여기저기에 우리 민족의 아픈 흔적들이 남아 있어 함봉산 일대 지하호를 주변의 관련 유적과 연계하여 역사자원 등으로 활용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조언하였다.
그러나 ‘조건’ 고려대학교 한국사연구소 연구 교수는 "지하호 시설 대부분이 민간인 소유 사유지에 포함되어 추후 해당지역 일대를 근대 유산으로 인정받는 것이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예상된다"며 "소유자, 지방자치단체, 문화재청 등이 머리를 맞대고 함봉산 지하호 주변 역사자원을 함께 개발하여 교육이나 관광 등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찾는 게 필요하다고 본다" 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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